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일본브랜드 이야기

✒️ “종이에 대한 예의”– 미도리(MIDORI), 조용한 기록의 철학

by record7420 2025. 6. 25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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Pixabay로부터 입수된 Deborah Hudson님의 이미지 입니다.

 

– 미도리(MIDORI), 쓰는 삶에 대하여

어떤 브랜드는 유행을 따르기보다, '느림'을 지킨다.
일본 문구 브랜드 미도리(MIDORI)가 그렇다.

1950년대, 일본의 문구 시장이 기능성과 대량 생산을 중심으로 빠르게 움직이던 시절,
한 작은 회사는 ‘종이를 쓰는 일’ 자체에 집중하기 시작한다.
디지털이 아니었던 시절, 사람들은 종이에 기록하고, 접고, 담아냈다.
그리고 미도리는 물었다. “종이란 무엇인가?”

그 질문의 답은 기술이 아니었다. 디자인도 아니었다.
그들은 종이를, 하나의 존재로 대했다.
그리고 그 존재에 예의를 갖췄다.


“紙への礼儀(종이에 대한 예의)”

미도리의 제품 철학은 단순하다.
‘쓰기 위해 만드는’ 것이 아니라, ‘쓸 수 있도록 돕는’ 문구를 만든다.

노트를 만든다고 해서 그 노트에 아무 글자나 채우게 하지는 않는다.
펜을 만든다고 해서, 잉크가 넘쳐 흐르게 하지 않는다.
미도리는 늘 한 발 물러서서, ‘쓰는 사람’을 주인공으로 삼는다.

이 브랜드가 말하는 “종이에 대한 예의”는 바로 그 태도다.
부드럽게 스며드는 종이의 질감,
넘기면 사각거리는 소리,
그리고 사용자가 원하는 대로 정리할 수 있는 여백.

그 모든 것이 종이에 대한 존중에서 비롯된다.
미도리는 ‘기록’이 아니라 ‘기억’을 위해 제품을 만든다.


✍️ 쓰는 삶, 쓰는 도구

미도리의 대표 제품 중 하나인 MD 노트 시리즈
표지조차 없거나, 그저 흰 종이 한 장이 전부다.
이름을 넣지 않아도 되는 노트,
라인도, 타이틀도 없는 일기장.

이것은 ‘완성된 디자인’이 아니라,
쓰는 사람이 완성하는 공간이다.

또 하나의 상징, 브라스 펜(Brass Pen)은
처음에는 반질반질한 황동색이지만, 시간이 지나면 손에 닿은 부분만 어둡게 바래간다.
기름때가 묻는 게 아니라, 기억이 쌓이는 것이다.

펜이 변하는 모습은 ‘흠’이 아니라 ‘시간’이다.
그리고 그 시간은 쓰는 사람의 손끝에서 조용히 쌓여간다.


🕰️ 사라지지만, 남는다

요즘은 뭐든 빠르다.
몇 초 만에 메모를 남기고, 몇 시간 만에 모든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다.
하지만 미도리는 그런 시대에,
사라지는 것을 통해,  남는 것을 추구한다.

한 줄의 글이 사라지더라도,
그 페이지를 넘긴 사람에게는 ‘어떤 감각’이 남는다.
펜의 무게, 종이의 질감, 손이 가는 방향,
그리고 그날의 감정.

미도리는 그렇게,  말하지 않아도 남는 것들을 믿는다.
그리고 그 믿음은 "문구"라는 이름의 철학이 되어,
오늘도 누군가의 책상 위에 조용히 놓인다.


🍃 미도리는 브랜드가 아니다.

태도이고, 습관이며, 당신의 삶을 기록하는 조용한 동행자다.

그들은 중심에 서지 않는다.
다만 당신이 앉아 글을 쓸 때, 그 곁에 있어줄 뿐이다.
당신이 잠시 머문, 그 자리에 함께해줄 수 있는 브랜드.
그것이 바로 미도리다.


Pixabay로부터 입수된 sakura c님의 이미지 입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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